아니 그래가지고(?)
어쩌다 10년 만에 다시 불타올랐느냐, 그리고 왜 かな書道까지 시작하게 되었느냐, 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죠? 따로 쓰려고 앞의 글에서는 일부러 언급 안했음. 헤헤
2023년 10월 11일부터 12월 3일까지, 도쿄 국립 박물관 헤이세이관에서 특별전 「やまと絵 -受け継がれる王朝の美-」(야마토에 - 전승되는 왕조의 미)가 개최되었습니다. 전시 시작 전인지 시작한 직후인지 아무튼 그 즈음부터 내용이 꽤 괜찮다더라, 이 정도 규모의 작품들이 한 군데에 모이는건 흔치 않은 기회다, 같은 감상이 들려오기는 했습니다. 사실 별로 사전 정보도 없었고 '가볼까? 궁금은 한데' 싶은 마음으로 찾아봤다가 귀찮아서 말았다가.. 그러고보니 언제까지지? 하고 다시 보니 전시 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이길래 부랴부랴 티켓을 예약해서 다녀왔습니다.
시간을 골라 예매해야 하길래 가장 이른 시간을 선택하고 기다렸다가 입장. 들어가자마자 사람이 진짜 많더라고요. 아 집에 가고 싶다.. 싶어졌지 뭐예요.
서장은 '전통과 혁신-야마토에 변천사'. 「聖徳太子絵伝」과 병풍 몇 가지가 있었어요. 사실 그 순간엔 제게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고, 그렇구나.. 아름답구나.. 하고서 슬렁슬렁 지나가려 했는데요..
본격적으로 제1장 '야마토에 성립 -헤이안 시대-'로 들어가자마자 藤原行成의 権記의 원본이 ..................... 아 저기요? 저기요 ??????? 왜 여기 계세요????(??) 감사합니다... 진짜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와서; (대충 일본 옛날 작품들 보여주겠지~ 정도의 사전 정보) 당황함과 동시에 확 집중도가 올라버렸지 뭐예요. 그때부터 하나하나 진짜 뜯어 먹을 정도로 열심히 봤음.. 후술 하겠지만, 도록도 산 김에 그것도 좀 들춰보면서 글을 써보겠습니다.
やまと絵야마토에는 아스카, 나라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래 된 당화唐絵를 베이스로 발전시켜 나간 양식입니다. 이국적 풍광이 아니라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 사계절의 변화 등에 대한 관심을 담아 당화의 모방에 그치는게 아니라 새로운 장르를 탄생 시키는데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특히 그 중에서도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 궁정문화의 근간이었던 와카和歌였죠. 와카로 읊어진 아름다운 명소나 풍경을 소재로 명소 그림名所絵이나 사계절 그림四季絵, 월 행사 그림月次絵(つきなみえ) 등이 탄생했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와카와 문예의 창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들에는 헤이안 당시 귀족들의 날카로운 미적 감각이 담겨 있고 이는 이후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1장에 왜 権記가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냐면, 이 '야마토에'가 언제부터 성립되었는가, 했을 때 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측되고 있고 문헌 상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기록이 바로 藤原行成의 한문 일기인 権記에서, 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몰랐다)
長保 원년(999년) 10월 13일의 기록에 「倭絵四尺屛風」라는 기술이 등장합니다. 이 병풍은 藤原道長가 딸인 彰子의 입궁(入内) 때 준비했던 故飛鳥部常則(10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궁정 화가)의 병풍으로,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이 병풍을 소재로 각자 와카를 읊었고, 그 노래를 行成가 色紙形에 적어내려갔다고 합니다. (아 탐난다... 저도 주세요.. 아니 개인소장은 아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부할게요...) 이 때의 풍경들이 미치나가의 일기인 御堂関白記(みどうかんぱくき)나 栄花物語(えいがものがたり)에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야마토에가 와카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매체였다는 것, 그리고 작은 화면이 아니라 큰 폭에 그려진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병풍의 그림을 보고 와카를 읽거나, 혹은 와카 속 풍광을 병풍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을 통해 야마토에는 점점 더 그 감성을 심화해나간 것이었습니다. 특히, 당화는 한시漢詩의 세계를 표현하며 공적인 공간을 꾸미기 위한 작품들이었던 것에 반해, 야마토에는 와카를 기반으로 사적인 공간을 자신들이 가깝게 느끼는 풍광들로 꾸미고 싶다는, 일종의 경쟁의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 중에서도 葦手가 흥미롭더라고요. 이 전시회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문자와 그림을 교차시키는 지적 유희로, 그림 속에 글자를 변형시켜 배치시켜 놓는 것입니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숨은 글자 찾기? 이후의 미술 작품에도 무척이나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요.
왼쪽은, 伝藤原公任의 葦手歌切.. 인데 사실 이건 그림 부분이 거의 사라져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고요. 이후 시대의 작품 중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하게 했던 작품들이 있어서, 다시 후술해보겠습니다.
1장 1절은 '야마토에 성립과 왕조 문예' 그리고 2절은 '왕조 귀족의 미의식'으로 이어집니다.
여긴 전반적으로 아 알지알지~ 이 공간 이 분위기 이 감성 알지알지.. 하.... 그립다(대체)..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흔하게 봐 왔던 그림 양식이나, 古今和歌集와 和漢朗詠集의 각 판본들이 있었고 특히 伝藤原行成의 판본인 和漢朗詠集(安宅切)・詩書切도 있었답니다 헤헤. 安宅切는 특히, 일본 국내에서 만들어진 料紙에 금은박(切箔, 揉み箔, 砂子)이 뿌려져 옆으로 길게 뻗은 흙언덕? 이나 풀과 새 등이 금과 은 도료로 그려져 있습니다. 料紙라는 단어도 이 때 처음 알게 되었지 뭐예요. 아무튼 반짝반짝 화려하고 아름다웠음.
이건 平家納経 薬王菩薩本事品 第二十三
여기에도 그림 속에 글자가 숨어 있는데 비교적 잘 보여서 아~~ 이런걸 말하는거구나, 했거든요. 특히, 중요한 글자를 숨겨 놓는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한 설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대충 그런 문화가 있었던 걸로..
그리고 이어지는 1장 3절, '사대 두루마리 그림과 원정기院政期의 두루마리 그림'.
두루마리 그림絵巻은 이야기와 그림을 향유하기 위해 고안된 형식으로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회화 형태라고 합니다. 원래는 중국의 画巻을 본딴 것이었으나, 문장詞書과 그림을 교차해 배치하면서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화폭에 적합한, 다양한 표현 방식들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源氏物語 17첩 絵合 속에는, 그림을 사랑하는 冷泉(れいぜい)帝의후궁에서 겐지와 頭中将가 준비한 絵巻의 우열을 가리며 경쟁하는 絵合라는 놀이의 양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 竹取物語, 宇津保物語, 伊勢物語, 正三位 등을 그린 絵巻입니다. 그 중에서도 겐지가 준비한 竹取物語는 巨勢相覧 그림, 紀貫之 글로 작중으로부터 약 100년 전, 10세기 전반 즈음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겐지가 자신있게 경합장에 가지고 올 만큼 훌륭한 絵巻가 이 시기에는 이미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紫式部의 絵巻에 대한 관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길한 내용이기 때문에 겐지가 가지고 오지는 않았으나 중국 주제의 두루마리 그림도 소장하고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는 내용은 야마토에와 당화의 관계성을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紫式部 시대의 絵巻는 아쉽게도 현존하고 있지 않지만, 헤이안 시대 말 원정기에는 '사대 두루마리 그림'으로 평가 받는 중요한 작품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두루마리 그림이 제작되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 속에 두루마리 그림 이야기가 서술되고, 또 겐지모노가타리가 두루마리 그림으로 제작되는 순환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네요. 제가 관람 갔던 시기에는 源氏物語絵巻의 夕霧와 若紫가 전시되어 있었답니다.
사실 겐지모노가타리 외의 두루마리 그림에는 크게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이 코너에는 鳥獣戯画도 전시되어 있었고, 여기에 흥미를 느낄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았겠지만.. 그게 저는 아니어가지궁... 病草子는, 만화 같은 표현이 엿보여서 흥미롭긴 했네요.
이제 2장으로 넘어갑니다. 2장은 '야마토에의 새로운 양상-가마쿠라 시대' 입니다.
가마쿠라 시대 미술의 특징은 사실성에 있다고 합니다. 특히 초상화와 풍경화에 있어서 그렇죠. 그럼에도 동시에 이전 시대부터 전해내려오는 미의식, 아름답게 이상화하여 그려내고자 하는 마음 또한 엿보입니다. 이 시대 대표작인 三十六歌仙 그림을 보면 특히, 초상화를 그려넣고 대표작을 써넣는 형식이 小倉百人一首カルタ의 가장 전형적인 디자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해주더라고요. 근데 이제 또 제 감성이랑은 약간 다른.. 헤헤.. 풍경화는 만다라曼荼羅화의 영향을 받은 구도들이 많고 그 변화가 또렷하게 보여서 제법 재미는 있었어요.
여기까지 두 시간 정도 보고 나왔는데 이제 고작 1전시실이 끝난거고 그만큼 한 전시실이 더 있다는거지 뭐예요...
그래서 쉬려고 1층 라운지 내려가서 비타민 음료 하나 마셨는데 그러는 동안 커다란 모니터로 源氏物語 8K 다큐멘터리 틀어주길래 그거 보고 있었음.
상술 했듯이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겐지모노가타리 絵巻(를 포함한 국보 작품들 몇 가지)는 기간별로 다른 종류를 전시했더라는걸 그제서야 알았고.. 아쉽긴 했으나 나는 사실 머리로 정보를 집어넣는것보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라는걸 10년 사이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뭐 별 수 없는거였고.
그리고 그 源氏物語絵巻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名古屋의 徳川美術館이라는 것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2025년이 미술관 개관 90주년이라서, 보유 중인 源氏物語絵巻 동시 공개 특별전이 예정되어 있다는거지 뭐야. 알겠어 가야지. 그때까지 이것저것 공부 좀 다시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도쿠가와 미술관에 갈 예정이 생겨 버릴 줄 그때는 몰랐지..
아무튼 그래서 헤이안 시대 당시 작품들은 1전시실에서 이미 끝났길래 남은 건 빠르게 보고 지나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2전시실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왕조에 대한 추모'를 주제로 헤이안 이후 시대에 헤이안 문학을 그리며 만든 작품들을 전시해주시지 뭐예요.... 크게 보면 나와 같은 족속 사람들인거잖아? 너;무;좋;아;
2장 2절 '왕조 추모의 미술'입니다. 아마 가장 익숙하게 보아 온 표현법들이 여기에 가장 많았어요. 그도 그럴게, 실제 헤이안 시대 당시의 그림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예요. 시대적 배경으로는 1221년, 承久의 난을 겪으며 천황이나 귀족의 정치적 발언력이 후퇴되고 경제적 기반 또한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제까지의 야마토에는 막대한 부를 등에 업은 귀족들에 의해 견인되어 왔는데, 이러한 상황이 크게 변화하자 잃어버린 헤이안 왕조 시대에 대한 추모를 담은 작품들이 다수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그것에 반발하며 더욱 더 옛날 것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고는 하죠. 그런 맥락입니다. 물론 동시에, 완벽하게 과거를 재현하는 데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정치적 입지를 또렷하게 반영하며 동시대의 궁정사회에 대한 긍지를 담아낸 것도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화려하기도 엄청 화려하고, '헤이안 미술' 했을때 흔하게 떠오르는 대표적인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 시대 작품인거 같죠.
2장 3절은 '가마쿠라 두루마리 그림의 다양한 전개'로 이어집니다. 바로 직전 2절에서, 헤이안 왕조 미술의 맥락을 이어가던 것에서 더욱 발전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세속적인 주제나 종교적인 주제 등으로 다양화하게 되죠. 귀족을 주인공으로 삼던 헤이안 시대 이야기에 더해, 무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전투를 그리는 두루마리 그림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로써 흥미를 유발시키려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시각화 하여 돌이켜 보는 기록화, 역사화로써의 의미도 갖습니다. 특히 이러한 그림들이 주로 무사가 아닌 귀족층이 주체가 되어 만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그들의 역사 인식 또한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 저는 역시나 관심이 생기지 않는 주제였네요. 그 중, 화엄경 두루마리 그림 속에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등장하는 건 좀 흥미롭긴 했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까.. 의상대사와 원효대사는 고작 해골물 정도로만 아는 한국인이지만.. 화엄경이 일본에서는 꽤 탄탄한 세력의 종파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어디에선가 들은적이 있는 것 같고요..
이건 華厳宗祖師絵伝 元暁絵 巻第一 중 일부인데, 아마 원래는 이렇게 이어진 그림이었던 것 같아요. 맞아, 絵巻의 단점(?)은 너무 길어서 도록이나 웹 이미지로 변환할때는 그 선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데에 있죠... 덕분에 실물을 보는 재미가 더 있기도 하지만.. 아무튼.
상술했듯이, 絵巻의 시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릅니다. 즉, 이 두루마리 그림의 주인공인 원효대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요. 길다란 그림의 오른편에는 험악한 산세 지형이 있고, 거기엔 주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누군가 앉아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원효대사겠죠? 그리고 그 주변에 호랑이들이 얼씬거리고 있습니다... 그러고나면 가운데에는 넓고 푸른 바다가 있습니다. 아마 위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욱 넓은 바다였어요.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평지 지형이 나타납니다. 아마도 이건, 오른편은 한반도 지형을, 그리고 왼편은 원효대사가 이동한 일본 땅 지형을 나타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험악한 산세와 소나무와 호랑이..? 아 너무나 한반도인데? 같은.. 뭐 그런 소소한 재미는 찾았고요..
3장으로 넘어갑시다. 3장은 '야마토에의 성숙-남북조, 무로마치 시대'입니다.
사실 저는 헤이안 이후 역사는 잘 모르고 관심도 별로 안 생기는데요... 아무튼 본격적으로 막부 정치가 시작된 시기가 아닌가? 하고 대충 생각합니다.. 예..
이 시대는 금박을 아주아주 넉넉하게 사용해 장식적이고 화려한게 특징이라고 하네요. 그치만,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뭐랄까 일상과 유리된 어떤 장식적인 것, 그런 장르, 그러한 위치가 되어버린 것 같기는 해요. 물론 이 시대에는 새로운 미술 양식들이 등장했을테니 과거의 양식은 그런 위치가 되어 버리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요.
四季草花小禽図屏風입니다. 번쩍번쩍 아주 화려하더라고요.. 화려하지만, 사실 저는 여기에 매력은 별로 못 느꼈어요. 상술했듯이, 그냥 과거로부터 내려 온 양식으로 이미 정해진 것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완성해내는것 같다고 해야할까. 딱, 제가 枕草子를 좋아하는 이유와 대치되니까 말입니다... 병풍이고 커다란 작품이라 한발자국 뒤에서 전체를 조망하며 바라보기에도 적당했고요.
3장 2절은 그래서, '남북조, 무로마치 시대의 문예와 미술'입니다. 이 시대 문예는 과거 귀족을 주인공으로 삼던 장편 형식을 벗어나 무사나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단편을 만드는 御伽草紙라는 분야가 확립되었습니다. 특히 여기엔 지옥을 배경으로 하거나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요소들도 다수 등장하게 됩니다. 유명한 백귀야행도 이 시대 작품입니다. 그리고 또한 和歌 대신 蓮歌가 유행합니다. 여러모로 제 취향이 아닌게 이미 드러나네요 껄껄..
3절은 '일・중의 교류와 융합'입니다. 중국을 통해 수묵화나 화조화 기법 등이 일본으로 전해지며, 당화唐絵 대신 한화漢画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야마토에와 한화는 각각의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서로의 요소를 반영하며 다양한 방식의 융합을 시도하게 됩니다.
한국, 하물며 중국의 수묵화 기법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양 상식 수준에서 그간 봐온 걸 떠올려 보면, 어떤 부분이 한국의 수묵화 기법과 차이가 있는지는 약간 알 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지금까지의 야마토에 양식에 이런 식의 표현 방식이 별로 없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렇네요. 동시에, 어떤 부분에 여전히 야마토에의 특징이 남아있는지도 얼핏 보이는듯 합니다.
이제 마지막 4장으로 이어집니다. '궁정 화실絵所의 계보'
궁정 화실은, 천황이나 귀족의 요구에 따라 그림 제작을 담당하던 조직입니다. 이전에도 그림 제작을 담당하는 부서는 있었으나 9세기 후반부터 궁정 내에 絵所라고불리는 조직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이후 에도시대 말기까지 계속됩니다.
현존하는 작품은 헤이안 말기 이후의 작품부터이지만, 해당 작품들을 통해 각 시대의 최첨단 유행이나 시대 최고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궁정 내 부서였으므로 궁정 내의 행사를 그려낸 두루마리 그림이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이런 그림은 특히 기록을 위한 목적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작은 메모(?) 같은게 적혀 있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이제 종장으로 향합니다. '야마토에와 사계-계승되는 왕조의 미'
야마토에やまと絵는, 약 천년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일본 미술의 왕도라 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그 주제는 크게 보면 '인간사'입니다. 사람들의 일상 속 생활이나 문화적 번영, 궁중에서의 행사나 사원, 절에서의 제례, 불교행사, 더해 和歌나 物語 등의 문예 세계를 포함합니다. 景物는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하는 자연과 꽃, 새, 등의 동식물, 와카 속에 읊어진 명소의 경치나 모티브 등입니다.
이렇듯 사계절의 양상을 그리는 것은 야마토에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입니다. 얼핏 사계절이 그려져 있지 않은 듯한, 혹은 사계절이 전부 다 표현되어 있지 않은듯한 작품 속에서도, 그 풍경 속에는 사계절 그림에 대한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주로 커다란 병풍 작품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그에 따른 자연의 변화, 각 계절의 동식물 등을 그린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상도요.
이렇게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헤이안 시대 미술은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디테일 하게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고, 실제 헤이안 왕조 미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고, 그 이후 시대에 헤이안 시대의 미의식을 어떤 식으로 이어 가고 다른 것(당화唐絵나 수묵화 등)과 접목시키려 했는지가 보여서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부러웠던 건, 천년 전 작품에 담겨 있는 미의식과 멘탈리티를 선형적으로, 맥이 끊기지 않도록 유지해 올 수 있었다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특히 한국인으로써는 더더욱이요..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기록한 유산으로써 즐기는 한편, 면이 아닌 선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화풍이라던가, 絵巻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 진행을 한 폭으로 이어진 평면 위에 표현하는 기법, 특히나 그 속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 나아간다는 일종의 약속, 등은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현재의 것들에 이어져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헤이안 문화를 좋아하던,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런 부분이기도 했어서 또 그런 마음이 들었죠.
전시를 다 둘러 본 후 나오면서 출입구에 쓰여 있는 부제(계승되는 왕조의 미)를 다시 보니 아, 그런 주제였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었죠. 나는 헤이안 왕조 문화를 너무 너무 좋아하니까 이 전시 전체가 다 좋을 수 밖에 없었던 거라는 걸. 오히려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더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도록도 샀고 포스트 카드도 샀습니다. 굿즈류는 백귀야행이나 요괴 종류를 중심 컨텐츠로 잡아서 귀여운 거 다양하게 만들어 두셨던데 제가 정말 관심이 전혀 없는 분야라 다행이었지 뭐예요.
제가 산 포스트 카드는 이 두 장이었습니다. 사실 제일 탐나는건 歌切 종류였지만.. 그런거 저나 좋아하죠; 굿즈로 만들어진 종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그 歌切나 和歌가 적힌 고필 작품들도 꽤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한자로 적힌 한문이라면 모르겠지만 히라가나로 적힌 문장이라면 읽을 수 있다면 의미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거예요.
그래가지구.. 다음에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라고 그 순간엔 그렇게 생각함) 또 비슷한 전시회를 보러 가기 전에, 히라가나 필기체(?)로 쓴 문장은 좀 읽을 수 있게 훈련해두면 좋지 않을까? 같은 생각에 도달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냥 보고 익히는 건 재미 없으니까 체험할 수 있는게 뭐 없을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かな書道라는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건 정말이지 헤이안 시대의 필체를 공부하고 그 시대의 작품들을 공부하는 장르라는건.. 조금 천천히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전시회를 다녀 온 직후에 근처에 있는 개인 작업실의 체험 클래스를 신청하고, 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고, 당장 주 2회 등록하고, 매일 같이 글씨 연습을 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 현재 진행형
그래서 10년 만의 복귀(?)는 모두 이 전시회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 그렇습니다.. 아무튼 전시회는 재미있었어요. 몇달 전에 다녀왔던 다른 전시회에서 굿즈를 살 마음이 전혀 안 들었었는데 (그나마 사고 싶은 건 굿즈로 안 만들어져있기도 했음) 그래서 나도 성향이 바뀐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건 그냥 그 전시회가 내 마음을 뒤흔들지는 못했던 것이었다는걸 깨달아버린거죠..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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