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여행 후기

아니다 개든 고양이든 한다면 여기겠죠 교토 여행③ 2025/05/04 일-05/07 수

센. 2025. 5. 1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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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쨋날 오후입니다.

원래 교토 어소를 나와서 二条城 니조성(쇼군들이 머물렀던 공간)에라도 갈까 생각했어요. 가까우니까요. 그런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본래 大内裏 대내리가 있었다던, 현재의 교토 어소보다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 그 곳이 너무 궁금한거예요.... 그야 그렇겠지. 내 성향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지? 
794년에 본래의 헤이안 궁이 세워진 후에, 여러 번의 화재를 겪고 1227년 드디어 16번째의 화재 후에 이 곳은 다시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1331년에 현재 위치에 새로 궁이 세워진 이래로는 수많은 사고와 재건 및 복원을 거치며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후지와라노테이카는 말년에 헤이안 궁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거예요. (제가 시대를 인식하는 기준...) 그러한 고로 마쿠라노소시와 겐지모노가타리 등이 한참 집필 되고 왕조문화가 꽃을 피우던 1001년 즈음에는, 이 곳은 아니었을 거라는거죠.
그럼 제게 남은 선택지는 딱 하나 뿐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일정을 전부 캔슬하고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이 쏟아지는 햇볕과 바둑판 모양(조방제)으로 쭉쭉 뻗은 도로가 너무 아름다워.. 
https://heiankyoexcavationdb-rstgis.hub.arcgis.com/

 

heiankyoexcavationdb

平安京跡データベース

heiankyoexcavationdb-rstgis.hub.arcgis.com

위 사이트에서, 현재의 교토 지도 위에 당시 헤이안 궁 조감도를 겹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첫번째로 만난 비석. 大蔵省 오구라쇼, 즉 넓다란 창고 공간이 있었던 곳입니다. 사실 内裏 내리라고 부르면, 현재의 교토 어소 공간과 동일하게 천황이 기거하는 공간과 황후 및 비들이 기거하는 공간을 가리켰지만, 실제 궁 전체 부지는 그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이를 大内裏 대내리라고 부릅니다. 위 안내판에 그려진 가장 큰 사각형 둘레가 바로 이 대내리 전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大蔵省는 그 중에서도 북쪽 끝에,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이 공간을 걸어서, 内裏를 향합니다. 이 정도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며, 오른편으로는 창고가 있고 왼쪽으론 舎人들이 업무를 보는 공간이 있었던 만큼 양쪽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느꼈겠지요.

 

이렇게 폐허가 되어있는 이 공간은,

바로 内裏가 있었을 공간입니다. (정확히는 그걸 둘러싼 것을 둘러싼 담장벽이 있었겠지만..) 마침 딱 건물도 없는 빈 땅이 잡초만 무성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데다가 그 너머로 보이는 안쪽 건물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창문이 깨지고 너저분한 상태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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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일수 100. 百敷や / 順徳院 준토쿠인

百敷や 古き軒端の しのぶにも なほあまりある 昔なりけり ももしきや ふるきのきばの しのぶにも なほあまりある むかしなりけり - 順徳院 [현대어 해석] 宮中にある古い軒の忍ぶ草を見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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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 노래가 생각이 나는거예요. 궁궐도, 오래된 처마도 이제는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말이예요. 헤이안 말기, 그리고 가마쿠라 초기를 살았던, 후지와라노테이카로 대표되는 영광의 왕조 문화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 시대의 변화 한 가운데에서 얼마나 쓸쓸한 마음들을 느꼈을까요. 그치만 천년의 시간을 넘어 현대에도 여전히 그 흔적을 좇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겐 위로가 될까요? 물론 테이카는 그걸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바친 사람이기도 하지만요... 

그런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간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서글픔과 일종의 위안을 같이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内裏로 들어가는 동쪽문, 建春門 겐슌몬 앞입니다. 

동시에 이 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内裏가 있던 위치에 세웠던 聚楽第 쥬라쿠테이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사건사고와 관련되어 약 8년 만에 철저히 파괴되었다고 하니 그 형태는 아직 제법 베일에 쌓여 있는 모양이예요.

자 이제 内裏 내리 안으로 들어가봅시다(?)

이곳은 동쪽 정문을 바로 통과한 温明殿 운메이덴입니다. 세 가지 신기 중 하나인 거울이 이 곳에 놓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어 해석도 제법 깔끔하게 적어주셨어요. 좋네요 허허.

그리고 이곳은 温明殿의 북쪽으로 이어진 昭陽舎 쇼요샤, 梨壺 나시쓰보 터입니다. 정원에 배나무를 심은 것에서 유래하여 梨壺 라고도 불렸습니다. 안내패널이 정남향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다른 곳과 비교해도 확연히 빛이 바랜 모습이 약간 마음 아프네요...

그리고 이 곳은 淑景舎 시게이샤 터입니다... 昭陽舎 보다 더 북쪽으로 붙어 있는 건물인데, 보시다시피 완전히 개인 주택 부지라서, 앞쪽에 오토바이를 놔두셨더라고요... 흑흑.......... 오동나무를 심어둔 것에서 유래하여 桐壺 기리쓰보 라고도 불렀는데, 특히 定子님의 여동생인 原子님께서 東宮 동궁으로, 황태자비로써 입궁하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고, 이는 마쿠라노소시에도 매우 기뻐하며 서술한 단이 있습니다. (이것도 포스팅해야만...)

이곳은 綾綺殿 료키덴 터입니다. 温明殿 바로 서쪽으로 이어진 공간입니다. 궁중 무용 등의 행사가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年中行事絵巻에서 예인들이 그려진 그림은 이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부지에 숙박 시설(아마?)을 만들어 이름을 綾綺殿으로 지어둔 것 같더라고요.. 허허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와서, 宜陽殿 기요덴 터를 찾았습니다. 紫宸殿에서 곧바로 동쪽으로 이어진 건물입니다. 천황의 사적인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백인일수 100번 시에 표현 된 '오래된 처마 끝의 넉줄 고사리'는, 현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녹이 슨 처마가 아닐까요? 마침 内裏의 거의 중심부에서 이런 풍경을 보다니,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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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일수 100. 百敷や / 順徳院 준토쿠인

百敷や 古き軒端の しのぶにも なほあまりある 昔なりけり ももしきや ふるきのきばの しのぶにも なほあまりある むかしなりけり - 順徳院 [현대어 해석] 宮中にある古い軒の忍ぶ草を見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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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香殿 조쿄덴입니다. 紫宸殿의 북쪽에 仁寿殿 니주덴이 있고, 그 더 북쪽에 바로 이 承香殿이 있는 구조입니다. 중앙의 길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뉘어, 동편에는 천황의 서적을 보관하는 공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古今和歌集가 바로 이 공간에서 집필되었다고 하네요.. 어흑흑.

弘徽殿 고키덴 터입니다. 紫宸殿 보다 북쪽에, 후궁을 위한 7전殿 5사舎가 지어져 있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후궁 건물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입니다. 이 건물에 바로 북쪽으로 연결된 燈華殿 도카덴은, 세이쇼나곤과 그가 모시던 황후 定子님이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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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라노소시 제7단. 主上に候ふ御猫は、천황께서 귀여워하시는 고양이는,

第七段。 主上に候ふ御猫(おほんねこ)は、冠賜りて、「命婦(みやうぶ)の貴婦人(おとど)」とて、いと、をかしければ、寵かせ給ふが、端に出でたるを、乳母(めのと)の、馬の命婦、「あ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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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華舎 교카샤, 飛香舎 히교샤 터입니다. 凝華舎는 남쪽 정원에 홍백의 매화를 심어둔 것으로 梅壺 우메쓰보, 飛香舎는 마찬가지로 등나무를 심어둔 것으로 인해 藤壺 후지쓰보라고도 불렸습니다. 동쪽으로 천황의 공간인 清涼殿이 바로 내다 보였기 때문에 후궁 중에서도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겐지모노가타리 집필 초기에 이 藤壺에는 무라사키시키부가 모시던 황후 彰子께서 기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겐지모노가타리 작중에서 후지쓰보는 무척이나 중요한 공간이자 중요한 인물로 그려지죠. 겐지의 성벽이 시작된 원인....

그리고 바로 이 곳이 清涼殿 세이료덴의 터입니다. 천황의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공간입니다. 현재의 교토 어소와 비슷하게, 정남향을 향하고 있는 紫宸殿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동쪽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는 했지만 현재의 清涼殿이 紫宸殿과 곧바로 이어지는 것에 반해, 이 清涼殿은 가깝기는 하지만 회랑으로 직접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영원히 골목길과 녹이 슨 처마 밑을 찍는 사람...

앗... 역시 제가 内裏跡 내리 내곽 회랑도 패널 사진은 찍었군요.... 네에... 모종의 사정이 있었으므로 일단 넘어갑니다(?)

平安京創生館 헤이안교 창생관과 京都市考古資料館 교토시 고고자료관에서 이러한 패널 설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해당 장소들을 소개해주는 패널입니다. 아니 제가 그래가지구...(복선)

蔵人町屋 구로도마치야 터입니다. 그러고보니 蔵人 같은 황궁 내 직책에 대해서도 포스팅을 해야만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며 1년이 넘게 지났군요 껄껄.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 블로그를 살리려면 일년에 두어번 쯤은 교토에 다녀와야겠다 (?) 
아무튼 蔵人는 천황의 비서 같은 업무를 수행한 직책으로, 그 가장 위에는 명목상의 책임자인 別当가 있었고, 바로 그 아래에는 실질적 책임자인 頭(とう)가 두 명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大弁 혹은 中弁에서 임명되기 때문에 頭弁(とうのべん), 다른 한 명은 近衛中将에서 임명되기 때문에 頭中将(とうのちゅうじょう)라고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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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라노소시 제136단.「頭の弁の御許より」'도노벤께서 가져다주시랍니다'

第一三六段。 「頭の弁の御許より」とて、主殿司、絵など様なる物を、白き色紙に包みて、梅の花の、いみじく咲きたるに付けて、持て来たる。「絵にやあらむ」と、急ぎ、取り入れて、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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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弁 도노벤에서 가장 유명한(저한테만요...) 분은 저의 유키나리님이시고요(?) 頭中将 도노츄죠에서 가장 유명한(객관적 기준..) 분은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히카루 겐지의 절친인 그 분이시겠죠. 허허..
https://sen9.tistory.com/13

 

源氏物語 겐지모노가타리 / 紫式部 무라사키시키부

源氏物語 겐지모노가타리 平安 중기에 쓰여진 장편 소설입니다. 中宮 彰子의 女房 였던 紫式部 무라사키시키부가 그 작자라고 전해지고 있죠. 시키부는 百人一首 57번의 작자이기도 합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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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内裏의 중심 공간인 紫宸殿 시신덴에 왔습니다(?) 
https://sen9.tistory.com/41

 

마쿠라노소시 제3단. 正月一日は、정월 초하루는, - 설명①

枕草子 마쿠라노소시 제3단. 正月一日は、정월 초하루는, https://sen9.tistory.com/37 제3단. 正月一日は、정월 초하루는, 第三段。 正月一日は、増いて、空の気色、うらうらと、めづらしく、霞み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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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교토 어소에서 紫宸殿 건물을 보고 왔기 때문에 여러모로 상상해볼 수 있었어요. 그 시절의 화려했을 영광을 말이예요.

물론 그 주변은, 정말 그 어느 것도 특별할 것 없는 주택가입니다... 혼자 주택가 걸으면서 아련한 기분에 젖는 외국인 관광객.....🥲

이제 内裏 외곽으로 나왔습니다. 남쪽 끝에 있는 문인 建礼門 겐레이몬 터입니다. 

그러고보니 교토 어소 가이드 투어 때에, 이 곳에서 동쪽을 보면 大文字山 '대' 글자가 있는 산, 如意ヶ嶽 뇨이가타케 산이 아주 또렷하게 보인다고 했는데, 현재는 주변 건물들 때문에 안 보이겠지만 분명 옛 内裏에서도 또렷하게 보였을거예요 그쵸..?
교토 어소 구경할때도 생각했지만, 궁궐 내 여기저기에 나무들을 잔뜩 심어둔건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미적 감각을 따르고 있는 걸테고, 실제 헤이안 당시에는 아무래도 나무를 옮겨 심어서 정원을 가꾸는 것도 현대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을테니 더더욱, 지정된 장소에만 나무를 심어두고 있었답니다. 

https://www.kyoto-museums.jp/museum/central/219/

위 복원 모형 등에서 알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당대 귀족들이 넓디 넓은 부지에 화려한 정원을 꾸며놓고 사계절을 즐긴 건 얼마나 사치스러운 취미였을지 상상이 되네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内裏 다이리 터를 감싼 외곽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점입니다...

여기는 内裏 외부에 있는 여러가지 건물들 중, 一本御書所 잇뽄고쇼도코로 터로, 内裏보다 동쪽에 있어 당대 세간에 유포되던 서적을 각 1권 필사하여 보관 및 관리하던 공간입니다. 현재로 따지면, 국회 도서관 같은 곳이네요ㅎㅎ 

内裏 내리 바깥으로 존재하고 있던 다양한 궁내 시설들을 소개해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공간들을 전부 다 합쳐 大内裏 대내리라고 부르는데, 동서로 약 1.1km 남북으로 약 1.3km의 규모를 자랑합니다. 각각에 역할이 있는 공간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업무와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죠. 

그래서, 이렇게 대략적으로 内裏 내리 구역과 大内裏 대내리 일부를 돌아 보았습니다. 대내리 터 전체를 돌아보기엔 너무 이곳저곳에 분포되어 있어서 포기했어요... 이렇게만 다니는데에도 벌써 2시간 반이 걸렸다고요..? 하하
중간중간 길거리 사진도 있었지만, 현재 이 지역에는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헤이안 궁 터'라는 포인트를 살려 상업시설(숙박시설 등)을 만들어 둔 경우도 있었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줄지는 모르겠더라고요ㅎ 왜냐면 옛 궁 터라는 포인트에 꽂히는 사람이 그런 숙박시설에 꽂힐까..? 같은 생각을 하면... (자기소개입니다)

 

휴 아직도 5/5 월요일이 끝나지 않아요... 그치만 이미 사진도 잔뜩 올려서 너무 무거워진것 같으니 여기서 한번 끊고 가야겠네요.... 여행기 언제 다 써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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