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歌이야기/百人一首 백인일수

백인일수 57. めぐりあひて / 紫式部 무라사키시키부

센. 2013. 2. 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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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unsplash.com/)

めぐりあひて しやそれとも わかぬに がくれにし 夜半かな
めぐりあひて みしやそれとも わかぬまに くもがくれにし よはのつきかな
                                                     - 紫式部

[현대어 해석]
やっと久しぶりに巡り会えたのに、それが君かどうか分からないうちにあの人は姿を隠してしまった。まるで雲間に隠れてしまった夜半の月のように。
오랜만에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그대인지 아닌지 모르는 새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마치 구름 사이로 금새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한밤중의 달인 것처럼.

紫式部(むらさきしきぶ)(970?~1014?)의 시입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헤이안 중기의 가인으로, 源氏物語겐지모노가타리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궁궐에서 一条天皇이치죠 천황의 中宮彰子황후 쇼시를 모시며 궁 내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紫式部日記무라사키 시키부 일기로도 유명합니다. 이렇듯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뿐만 아니라, 그는 노래에 있어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 시는, 얼핏 보았을때는 마치 사랑 노래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아버지인 藤原為時(ふじわらのためとき)가 越前(えちぜん/지금의 후쿠이현 지방)에 부임했을 때, 20대 중반의 시기 약 1년 정도를 함께 지방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이렇듯, 중간 계급층에서는 지방 수령직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많은 여성들이 지방에서 생활하거나, 수령의 아내가 되어 수도를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이 시에 등장하는 시키부의 친구 또한 시키부와 비슷한 신분이었고, 남편을 따라 수년 간 수도를 떠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めぐりあう」라는 단어는, 숙어처럼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 단어의 면면을 살펴 보면 빙글빙글 도는 인연과 운명 속에서 마침내 만난 것만 같은 뉘앙스를 줍니다. 특히 이 시에서는, 「月」와 연관 있는 단어로 「めぐる」를 사용한 측면이 보입니다. 이를 縁語라고 합니다. 달이 밤하늘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에 연결지어, 무라사키 시키부는 그리웠던 친구와의 만남이 그렇듯 스쳐가는 인연이며 한 순간의 만남이었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반가움, 그리고 그 반가움을 마음껏 기뻐할 새도 없이 금방 헤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움이 구름 뒤로 숨어버리는 달의 모습에 빗대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쓸쓸함이 한껏 느껴지는 시예요... 시키부가 어찌나 아쉬워 했을지, 그의 심정이 손 끝에 잡히듯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 아래로는 그냥 혼자 하고 싶은 말. 굳이 쓰진 않으려고 했으나 이런걸 쓰지 않으면 뭐 하려고(?) 블로그를 쓰나 싶어서 굳이 굳이 덧붙여 둡니다. 
최근에 겐지모노가타리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번역본으로는 거의 읽긴 했으나 디테일한 부분을 잊기도 했고, 겸사겸사요. 그 중에서도 頭中将, 그리고 다른 남자들과 어떤 여자가 매력적인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던 내용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남성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 하는데도, 작가가 여자라는게 여실히 느껴지는구나 싶어서요.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시키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거든요.
특히, 백인일수에 실린 이 시도 무척이나 특징적인데.. 원래 이 시가 실렸던 新古今集에, 시키부 본인의 글로 이 시를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웠던 친구를 만난 순간을 묘사한 시라고요. 만약 그러한, 본인의 설명이 없었다면 평범하게 이성인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사랑 이야기로 해석 되었겠죠? 농담처럼, 紫式部는 腐女子 라고들 표현하곤 하는데요... 사실 현대에도 그런 식으로 가상의 '남성' 인물을 경유해 현실의 여성들과 연결 되고자 하는 여성들이 있는 것처럼... 저는 시키부가 여성애자에 가까웠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본인이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야.. 천년 전이니까요. 아마 그 시대 사람들도 터부시 하고 있었겠죠. 궁 안에선 거의 여자들만 모여 생활하고 있으니, 알음알음 서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고요. 그치만 또 앞에서 소개한 시에 대해서 일부러라도 시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걸 보자면, 알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시키부 또한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긴 했어요. 그런 시대였을테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여성들로 하여금 많이 공부하고 똑똑해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던 시대에, 자신의 뛰어난 실력을 숨기면서 그걸 활용해 겐지모노가타리라는 명작을 만들어 냈을 시키부를 생각하면.. 아마 그 또한 다른 여성들에게 읽힐 것을 상상하며 글을 써내려갔을거예요.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즐길 거리가 부족하고 자유롭게 서로 만나기도 어려운 시대라서, 그 거리감들을 채워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게 아닐까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갑자기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를 읽고 싶어집니다. 조만간 찾아봐야겠어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쇼나곤을 더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세이쇼나곤은 시키부에 비하면 조금 더... 산뜻하고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글을 씁니다. 남자를 제법 귀여워 하거나 재미있어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똑똑한 사람이라 아마 자신이 여성으로써 처해 있는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을 거예요. 백인일수에 실린 그의 시에서도 약간 느껴져요. (물론 저는.. 藤原行成도 좋아하긴 하지만;) 콧대 높은 태도가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게 되는 입장인 것과, 그럼에도 동시에 그걸 꿰뚫어 보며 당당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건, 그 상황들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아마 쇼나곤은 스스로 알고 있었겠죠.

아무튼 그래서 제가 헤이안 문학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천년을 지나고서도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글은 그걸 쓴 사람의 생각을 분명하게 담아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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