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歌이야기/百人一首 백인일수

백인일수 35. 人はいさ / 紀貫之 기노츠라유키

센. 2024. 1. 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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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나)

はいさ らず ふるさとは ひける
ひとはいさ こころもしらず ふるさとは はなぞむかしの かににほひける

                                                     - 紀貫之

[현대어 해석]
あなたは、さてどうでしょう。他人の心の中は分からないけど、ただ、馴染み深いこの里では、梅の花だけが昔のままに香りを漂わせています。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실지요. 타인의 마음 속은 모르는 것이지만, 그저 옛부터 익숙한 이 마을에서는 매화 꽃만이 옛날 그대로의 향기를 가득 채우고 있네.

紀貫之(きのつらゆき)(868?~945)의 시입니다. 헤이안 시대 손꼽히는 가인으로 유명합니다. 醍醐天皇(だいごてんのう)의명을 받아 편찬된 古今和歌集(こきんわかしゅう)의 주요 편찬자 중 한 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고금와카집의 가나 서문을 츠라유키가 직접 쓴 것으로도 유명하죠. 이 서문에는, 그야말로 일본 고전 문화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和歌 와카와 당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이 사람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죠.

뿐만 아니라, 유명한 고전 문학 중 하나인 土佐日記 토사일기라는 책 또한 썼습니다. 츠라유키가 토사국(현 고치현 지역)에서부터 도읍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일어난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엮은 책입니다. 특히 그 당시까지 대부분의 일기들이 한문으로 쓰여졌던 것에 반해 가나 문자로 적어내려간 것이 특징입니다. 당시 가나 문자는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여겨졌는데요, 그런 만큼 이 일기 속에서 츠라유키는 본인을 여성 화자로 상정하고 글을 적었습니다. 이는 이후 여류 문학, 특히 일기 문학의 발달에도 무척이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蜻蛉日記 가게로 일기' '和泉式部日記 이즈미시키부 일기' '紫式部日記 무라사키시키부 일기' '更級日記 사라시나 일기' 등이 그것입니다.

 

위 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도 변하는데, 오래된 익숙한 마을에 핀 꽃 향기만은 변함없이 그대로이구나, 하는 내용을 노래로 읊고 있습니다. 이 시는 츠라유키 본인이 편찬에 관여한 古今和歌集 고금와카집 1권에 실려 있었는데, 이 시를 적은 배경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初瀬に詣づるごとに宿りける人の家に、久しく宿らで、程へて後にいたれりければ、かの家の主人、『かく定かになむ宿りは在る』と言ひ出して侍りければ、そこに立てりける梅の花を折りて詠める」
初瀬(はつせ) 지역(현 나라현 사쿠라이시 지역)에 있는 長谷寺(はせでら)에 참배하러 갈 때마다 신세를 지러 간 사람의 집에, 한동안 뜸하다가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그 집 주인이 '당신은 이미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과 나는 늘 그대로 여기 있었소' 하는 말을 하길래 그 집에 있던 매화 꽃 가지를 꺾어, 이렇게 노래하다. 라고요. 집주인이 쏘아 붙인 말에 대해 그쪽이야말로 마음이 바뀐 게 아닌가요, 이 매화꽃 향기만이 변함없이 남아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네, 하는 기분으로 읊은 노래가 아닐까요.
변하기 쉽고 서로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과,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늘 같은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꽃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현대에 와서 '벚꽃'은 일본을 표현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이 역사 속에서 그만큼 벚꽃을 사랑하고 꾸준히 아름다움을 찬양해왔기 때문이죠. 백인일수 9번, 오노노코마치의 시 또한 벚꽃을 보며 읊은 노래이죠. 그런데 이 9번 오노노코마치의 시 속에서 花 '꽃' 이라는 보통명사가 '벚꽃' 이라는 고유명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35번 츠라유키의 시에서도 花 '꽃' 이라는 보통명사가 등장하는 것은 동일한데 이는 '매화' 라는 고유명사를 표현하고 있죠. 이는, 시대에 따라 일본인들이 사랑해 온 꽃이 변화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금와카집이나 백인일수보다 앞서 쓰여진 万葉集 만엽집을 보면, 명확하게 '벚꽃'보다 '매화'를 노래하는 시가 많습니다. 그러나 매화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유래한 식물로, 중국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귀족들의 저택 등에서 매화를 심어 놓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곤 했습니다. 농민들이 노래한 시에는 매화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츠라유키가 편찬에 관여한 고금와카집을 보면, 차츰 '꽃'으로 표현하는 대상이 벚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화해가는 것이 보여집니다. 물론 앞에서 츠라유키의 시와 오노노코마치의 시를 비교한 것과 같이, 일정 부분 혼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역사 구분에서 가리키는 '상대 시대' 즉, 아스카 시대부터 나라 시대 사이에는 꽃이 매화를, 이후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며 꽃은 벚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화했다고 합니다. 물론 명확한 시기는 알기 어렵고, 언어의 변화가 그렇게 또렷하게 한순간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변화를 통해 벚꽃이 사랑받게 된 과정을 조금쯤은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같아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아마 언어나 그림에서의 변화 또한 비슷해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문화에서부터 일본 고유의 문화로 점차 변화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문에서 가나, 당화에서 야마토에로의 변화)

 

古今和歌集巻子本 仮名序(巻頭) / 大倉集古館 소장

앞에서 언급했던 고금와카집의 가나 서문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古今和歌集巻子本(こきんわかしゅうかんすぼん)이라고 하네요. 위 글씨는 伝藤原定実(でんふじわらのさだざね)로 추측되고 있고, 이 사람은 참고로 藤原行成의 4대손입니다. (아름답다..)

이걸 각 글자 자막을 달아주시며 쓰는 영상도 발견했습니다... 아름다워... 나도 얼른 열심히 공부해서 고필 따라 쓰고 싶다 흑흑... 원본을 바로 옆에 두고 따라 쓰시면서 어떤 글자인지 자막을 달아주는게 너무너무 친절하고 글씨가 아름다워서 감탄하며 봤습니다. 이 서문 내용도 너무너무 사랑하거든요. 

아, 그러나 이 글은 츠라유키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츠라유키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포스팅 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엥 아직 안했다고? 싶어서 부랴부랴 이 글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이미 글이 길지만 정말로 그만큼, 고전 문학에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신 분이어서요. 뿐만 아니라, 고필古筆 중에도 그가 남긴 글씨로 추정하는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伝紀貫之 高野切 古今和歌集巻第一巻首 / 고토미술관 소장
伝紀貫之 高野切 古今和歌集巻第一巻首 / 도야마기념관 소장

현존하는 고금와카집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高野切(こうやぎれ)입니다. 아마 윗작품은 올해 고토미술관 전시회에서 공개하지 않을까? 나도 곧 볼수 있는게 아닐까? 아무튼.. 앞의 伝藤原定実와는 명확히 다른 분위기의 유려한 선을 쓰는게 큰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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