来ぬ人を まつほの浦の 夕なぎに 焼くや 藻塩の 身もこがれつつ
こぬひとを まつほのうらの ゆうなぎに やくや もしほの みもこがれつつ
- 権中納言定家
[현대어 해석]
松帆の裏で、夕なぎの時に焼かれている藻塩のように、私の身も来てくれない人のことだけを思い、恋い焦がれてしまいそう。
松帆(まつほ)마츠호(현 효고현 아와지시마 최북부에 있는 해안선의 지명) 바닷가에서, 고요한 저녁에 구워지고 있는 해초 소금처럼, 나 또한 오지 않는 사람만을 기다리며 애끓는 가슴 속이 타들어가네.
権中納言定家(ごんちゅうなごんさだいえ)(1162~1241), 藤原定家 후지와라노 테이카의 시입니다. 백인일수를 편찬한 사람이죠.
시 본문을 보면, 来ぬ人を「ま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말과 「まつ」ほの浦 '마츠'호 바닷가라는 단어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 부분의 身もこがれつつ 몸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구워지는 해초소금의 현재 모습이면서 동시에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지요.
특히 이 시는, 万葉集 만엽집에 있는 長歌 장가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名寸隅(なきすみ)の、舟瀬(ふなせ)ゆ見ゆる、淡路島(あわぢしま)、松帆(まつほ)の浦に、朝なぎに、玉藻(たまも)刈りつつ、夕なぎに、藻塩(もしほ)焼きつつ、海人娘子(あまをとめ)、ありとは聞けど、見に行かむ、よしのなければ、ますらをの、心はなしに、手弱女(たわやめ)の、思ひたわみて、たもとほり、我れはぞ恋ふる、舟楫(ふなかぢ)をなみ」
名寸隅(なきすみ) 나키스미의 舟瀬(ふなせ) 후나세에서 보이는 淡路島 아와지시마의 松帆 마츠호 바닷가에서는, 아침에는 해초를 따고, 저녁무렵이 되면 해초 소금을 굽는 젊은 해녀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해녀들을 보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 연약한 소녀처럼 마음이 바스라져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며, 그저 나는 사랑에 잠겨 있을 뿐이네. 배도 노도 없어서.
笠金村(かさのかなむら) 가사노 가나무라라고 하는 나라 시대 가인의 시입니다. 聖武天皇 쇼무 천황이 印南野(いなみの) 이나미노 지방으로 행차 할때 수행하며 따라갔다고 하는데, 이 때의 경험을 소재로 쓴 시로 추정됩니다. 이나미노 지방은 현재의 효고현 남부를 가리킵니다. 名寸隅(なきすみ)の船瀬(ふなせ) 나키스미의 후나세는 현재, 魚住の泊라 쓰고 우오즈미노 도마리 라고 읽습니다. 이곳은 현재의 효고현 아카시시 에이가시마에 과거 있었던 바닷가 선착장으로, 현재에는 그 터만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쪽에 있는 노란색 풍선이 앞에서 말한 바닷가 선착장이 있던 터입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저 너머로 보이는 곳, 江埼灯台라고 쓰인 곳이 아와지시마의 최북단 해변, 마츠호입니다. 일행은 이곳에 도착해서 바다 건너 마츠호를 바라보았고, 결국 아와지 섬을 찾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이 사이를 잇는 긴 대로가 설치 되어 있지만 가나무라가 읊은 시처럼, 그 당시에는 배와 노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었죠.
만엽집에 실린 이 시 이후에, 이 장소가 시의 소재로 쓰인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테이카는 더욱 자신의 쓸쓸한 마음을 겹쳐 본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 장가에 대한 답가는 아니겠으나, 아와지시마의 마츠호로 시선을 옮겨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해초 소금을 굽는 여성에게 이입했겠지요.
테이카는, 백인일수를 편찬하며 스스로의 시 중에서 이 한 수를 골랐습니다. 어떤 마음에서 이 시를 골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면 지금껏 자신 이전에 살아왔던 수많은 가인들에 대한 일종의 존중과 존경심을 담아내고자 했던게 아닐까? 하고,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테이카는, 뛰어난 가인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이상으로 역사 속의 수많은 시를 모으고 연구해 백인일수를 포함하는 수많은 가집을 편찬했고, 겐지모노가타리와 마쿠라노소시 등의 수많은 고전을 필사하고 주석을 붙이는 데에도 힘써 왔습니다. 동시에 18세부터 74년까지 일기를 꾸준히 적어 오기도 했죠. 물론 그 외의 저작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헤이안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로 넘어가는 그야말로 격동기의 중심이었던 시기였습니다. 무척이나 어렵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 가면서, 찬란하게 빛났던, 그리고 이제 지려고 하고 있는 과거의 유산들을 그대로 흘려 보낼 수 없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후대에 남기려고 했던 것일 겁니다. 덕분에 테이카의 글씨도 무척 많은 수가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헤이안 시대의 고전 작품들을 즐길 수 있는데에는 테이카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도 테이카에게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후대인으로써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和歌이야기 > 百人一首 백인일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인일수 45. あわれとも / 謙徳公 겸덕공, 후지와라노 고레타다 (0) | 2024.01.09 |
---|---|
백인일수 15. 君がため / 光孝天皇 고코 천황 (1) | 2024.01.07 |
백인일수 51. かくとだに / 藤原実方朝臣 후지와라노사네카타 아손 (1) | 2024.01.05 |
백인일수 35. 人はいさ / 紀貫之 기노츠라유키 (2) | 2024.01.02 |
백인일수 1. 秋の田の / 天智天皇 덴지 천황 (0) | 2024.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