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本 十二。
薄様色紙は白いの。紫。赤き。刈安染(かりやすぞめ)。青きもよし。
얇은 종이는, 하얀 것. 보라. 붉은 빛. 苅安染. 푸른 빛도 좋다.
지난 번 글에서, 枕草子 마쿠라노소시 판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제가 읽고 있는 ちくま学芸文庫에서 출판된 버전은, 能因本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데, 三巻本의 내용 중에 소개 하고 싶은 것이 있어 포스팅 해 봅니다. 三巻本(さんかんぼん)에는 특히, 중간에 「一本 きよしと見ゆるものの次に」 라고 운을 떼며, 각 주제에 따라 짧게 자신의 생각을 적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을 '一本' 이라고 일컫는데, 이 내용은 三巻本 외에는 발견되지 않고 있어 최종 원고와 별도로 다른 책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남아 있습니다.
이 별책 부분은 '밤이 될수록 더 좋은 것' 을 소개하는 단으로 시작하며 각각의 주제에 따라 세이쇼나곤의 취향에 대해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중 12번 째의 짧은 단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이 12번 째 단에서는 '薄様(うすよう)'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닥나무(雁皮)로 만든 일본의 전통적인 종이 종류를 가리킵니다. 무척이나 얇게 가공했다고 하여 薄様, 즉 '얇은 모양' 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특히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종이는, 원료인 산닥나무의 섬유질이 짧은 특성 덕분에 표면이 매끈한 질감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유려한 가나(히라가나)를 쓰는 데에 적절했고, 가나는 즉 여성들의 언어로 여겨졌기 때문에 당대 귀족 여성들에게 무척이나 사랑 받았습니다. 늘 소지(懐紙)하고 다니며 시(和歌)나 문서 등을 옮겨 적었고, 물건을 포장하는 데에도 활용했습니다. 때로는 어린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묶어주기 위해 종이를 여러 겹 꼬아 끈처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은 얇은 종이, 사적인 용도로 이용되는 것, 여성들의 것, 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공적인 자리에서 이용하는 종이는 두꺼운 종이(厚様), 중국에서 만들어진 唐紙, 남성의 종이로 여겨지던 것과 대조적인 위치죠. (물론 남성들의 '두꺼운 종이' 또한 점차 일본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변화해가기는 합니다)
특히 이러한 얇은 종이는, 색을 입혀 놓은 것을 여러겹 겹치면 아래쪽 종이의 색이 비쳐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당대 귀족 여성들의 의상이 주로 여러가지 색을 겹쳐(かさね) 꽃이나 나무, 계절에 맞는 자연의 풍경들을 표현한 것 처럼 이 종이로도 비슷한 감성을 담아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됩니다.
특히, 무언가를 적기 위한 종이를 통틀어 料紙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현재에도 전해져 내려와, 서예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종이를 여전히 料紙(りょうし)라고 부릅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이러한 종이도, 점차 장식성이 강한 것으로 변해갔습니다.
이 과정에는 궁정의 종이 제조 시설인, 紙屋院(かみやいん/かんやいん)이 무척이나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궁궐에서 공적인 용도 및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종이를 제조 했는데, 관영 시설인 만큼 가장 최고급의 종이를 만들어냈습니다. 헤이안 시대 초반에는 여전히 당나라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중국의 당나라에서 수입된 唐紙(からかみ)를 아름다운 것, 훌륭한 것, 고급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점차 이 당나라 종이의 기법을 모방하여 국내에서 종이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종이들은, 당연하게도 고필古筆 작품에서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얘기는 차차 해보도록 하고요.
아무튼 다시 원문으로 돌아가볼까요. 이렇듯 여성들이 다양한 곳에 사용하며 늘 품에 지니고 있었던 얇은 종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색을 입히기도 하고 물들인 색을 겹쳐 다른 색을 표현하기도 하는 등의 방식으로 향유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얀 것'이 문장의 가장 처음에 온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종이인 만큼 무언가를 쓰는 목적이라고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얀 종이겠죠? 저도 마침 글씨 연습을 하던 종이가 옆에 있는데, 색이 들어간 것은 또 그것대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손에 꼽는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하얀 것을 말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보랏빛. 마쿠라노소시의 가장 첫 번째 단인 '봄은 새벽녘'으로 시작하는 글에서도, 봄 새벽 하늘의 보랏빛이 아름답다고 쇼나곤은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쇼나곤은 보라색을 꽤나 좋아했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다시 차분히 생각해보면, 헤이안 시대 당시에 '보라색'은 고귀하고 우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지난 번 다녀왔던 겐지모노가타리로 보는 복식 전시회에서도 소개되었지만, 보라색은 紫根, 紫草의 뿌리로 염색하여 색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염색 과정이 무척이나 복잡하여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채집한 뿌리를 건조시킨 후, 돌 절구에 넣어 절구공이로 빻습니다. 그 후에 마로 만든 자루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거릅니다. 이어, 재료로부터 보라색 색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때까지 자루를 짜내어 액체를 얻어냅니다. 특히나 이 뿌리가 열에 약해, 아름다운 보랏빛을 내기 위해서는 액체의 온도가 60도 이하인 채로 염색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손에 넣기 어렵고 귀한 보라색이었던 만큼 관직에 따라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보라색 옷을 입도록 정해져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재료였던 紫草도 현재에는, 야생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사실 보라색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겐지모노가타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겐지모노가타리 속에서 겐지가 가장 사랑했던,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상대는 바로 藤壺(ふじつぼ)입니다. 藤 후지, 즉 등꽃은 아름다운 보랏빛을 자랑하는 봄의 꽃이죠. 그리고 겐지의 어머니, 桐壺更衣(きりつぼこうい), 桐 기리는 오동나무를 가리키는데, 오동나무 꽃도 늦은 봄에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피어납니다. 그리고 겐지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성, 紫の上(むらさきのうえ), 紫 무라사키는 그 자체로 보라색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보라색'을 다른 색에 비해 더 고귀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겼는지, 조금 감이 잡히시나요?
아마도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라색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가장 우아하고 좋은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마쿠라노소시의 이 단 뿐만 아니라, 마쿠라노소시 여기저기에서 보랏빛을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표현은 아마도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붉은 색 또한 빼놓을 수 없죠. 붉은 색은 사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곳에서 사랑받는 색인 것 같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붉은 색, 노을이 지는 붉은 색, 어쩌면 가장 강렬하게 사람의 눈을 빼앗는 색이기 때문일거예요. 뿐만 아니라, 붉은 꽃들은 그 종류가 많기도 하니 친근하면서도 언제 봐도 아름다운, 그런 색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냥 쇼나곤의 취향이겠지만요. 지난 번에 포스팅한 이 단에서 아주 새빨간 얇은 종이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는 묘사가 있었는데, 아마 그 때 쓴 종이가 이 종이겠죠?
苅安染(かりやすぞめ), 드디어 색이 아닌 단어(?)가 나왔습니다. 참억새의 일종인 苅安로 물들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약간 푸른기가 도는 노란빛을 냅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보다도 훨씬 이전, 아스카 시대부터 염색에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8세기 이후에는 직위나 관직이 없는 사람의 정복에는 이 색을 이용했다고 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글씨를 쓴다는 의미에서는 흰색은 아니지만 글씨를 쓰기 좋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색일테고 동시에 흔하고 널리 퍼져 있어서 가장 친근한 색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노란색' 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山吹(やまぶき) 같은 화려한 노란색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굳이 여기에만 苅安로 물들인 것, 하고 언급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푸른 빛의 종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조금 이야기가 복잡해질지도 모릅니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일본에서도 신호등의 '초록색' 불을 파란불이라고 부릅니다. 푸른 산, 푸른 잎, '푸른 봄' 이라고 부르는 청춘. 고대의 일본에서 가리키는 '푸른빛'은 꽤 넓은 범주의 색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1월 7일의 궁중 행사인 백마 節会도 사실은, 白馬 라고는 쓰지만 あおうま, 즉 푸른 말이라고 불렸거든요. 아마 이것은 약간 회색 빛을 띄는 말을 보고 푸르다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합니다.
물론 쇼나곤이 살았던 시대 즈음이 되면 이미 藍あい, 즉 쪽을 이용한 염색 방법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점차 우리가 알고 있는 '파랑'의 색에 가까워지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그 전반적인 것을 다 가리키고 싶었던걸까? 하는 생각을 살며시 해봅니다. 왜냐하면, 青いの, 파란 것, 이라고 정확하게 명시하기 보다는 青き, 하며 푸른빛이 도는 것들도 무척이나 아름답지, 하는 표현으로 읽히거든요.
물론 이렇게 늘어놓고 나면, 그럼 좋지 않은 색이 과연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닐테지만, 그건 당연한 거예요. 쇼나곤은 자연과 일상 속의 사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떤 색이든 그 색 그대로 아름답고 그 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색이 분명 있을테니까, 아름다운 종이는 다양한 색이 많은게 더 좋잖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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