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古今和歌集 고금와카집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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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금와카집에는 여러가지 사본이 여전히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고금와카집의 옛 사본들을 포함하여,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의 아름다운 서예 작품들을 '古筆 고필'이라고 부릅니다.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古典 고전이라고도 불리죠. 히라가나를 중심으로 서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かな書道, 히라가나 서예에서는 특히 이 고필을 빼고 논할 수 없고, 고금와카집의 사본들이 바로 그 중심에 있습니다.
かな 문자 성립 초기에는, 한자를 사용한 한문이 공적인 영역에서의 언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かな 문자는 사적인 영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라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죠. 이는 아마 고금와카집 성립 당시에도 비슷한 분위기였을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특히 이 かな 문자를 중심으로 한 고금와카집이 편찬된 이후, 이 고금와카집을 통해 かな 문자는 더욱 중요한 위치로 올라서고, 새로운 의미들 또한 탄생하게 되죠. 귀족들이 중심이 되어 かな 문자로 시를 지어 이를 읊고 서로 나누고, 또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며, 이렇게 남긴 것은 단순한 문자 기록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통해서도 다시 '아름다운 형태'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古筆 고필 작품들이고 고금와카집의 사본들인 것입니다. 히라가나 서예가 추구하는 '일본적인 아름다움', 그것은 '和歌 와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도 분명히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별 고금와카집의 사본들을 보면, 어떤 식으로 문자가 표현되었는지, 혹은 글자를 쓸 때에 어떤 부분에 더욱 공을 들였는지, 그리고 어떤 장식적인 종이들을 사용했는지 등에 대한 모양새들과 그 변화들을 또렷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의 서예 공부는 아직 고전 작품을 보고 본격적으로 따라 쓰는 연습을 하는 데까지 들어서지 못했지만, 곧 그렇게 될 거기도 하고 아무튼 고필 작품은 기회가 되면 최대한 직접 보려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겸, 서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고금와카집 사본들을 성립 시대 순서에 따라 몇가지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高野切(こうやぎれ) 고야기레. 11세기 중반에 성립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 때 高野산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습니다. 전체를 세 명이 분담하여 적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현재에 완본으로 남아있는 것은 5, 8, 20권으로 그 외에는 단편적인 서예 작품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사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切(きれ)는, 각각으로 잘려 나누어진 단편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 성립 당시에는 한 권씩의 책으로 엮어진 완본으로 존재했을테지만, 무로마치 시대 이후 시대에 이러한 고필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조각조각 나누어 일종의 앨범처럼 엮거나 족자 형태로 만들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누어진 것을 切(きれ) 혹은 断簡(だんかん) 이라고 합니다.
伝紀貫之(でんきのつらゆき)로 전해지고는 있으나... 전술했듯이 이 작품은 11세기 중반의 작품이므로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각 서풍에 따라 나누어진 3종 중 제 1종은 藤原行経(ふじわらのゆきつね/후지와라노 유키나리의 삼남), 제 2종은 源兼行(みなもとのかねゆき), 제 3종은 藤原公経(ふじわらのきんつね)의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있어 高野切는, 일종의 입문용 교과서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서풍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각조각 잘려서 여러 곳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보러 다니려면 바쁘겠네요 네(?)
関戸本古今和歌集(せきどぼんこきんわかしゅう) 세키도본 고킨와카슈입니다. 関戸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습니다. 앞의 高野切와 마찬가지로 11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것 또한 조각조각으로 나누어져 여러 곳에서 소장되고 있으며, 현재에 남아 있는 것은 전체의 약 5분의 1 정도로 추측됩니다. 伝藤原行成(でんふじわらのゆきなり)로 전해지고는 있으나, 이 또한 마찬가지로 유키나리보다 이후인 11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활용된 종이의 색 조합이나 선의 농담을 달리 하며 표현한 전체의 조화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고필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소장되고 있으므로 그걸 한 곳에서 모아 볼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지난 번에 다녀 온 전시회에서 두 점을 보고 오기는 했으나 기회가 될 때마다 달려가서 봐야만 합니다.. 조만간 또 다녀올게요(?) 앞의 高野切가 비교적 전체적으로 일정하게 유려한 선을 쓴다면, 関戸本은 변주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깁니다. 글씨를 쓰다 중간에 먹물을 더 묻히는 걸 墨継ぎ 라고 하는데, 일정한 지점(예를 들면 한 줄이 시작하는 포인트)에서 먹물을 묻히는게 아니라, 각각 다른 지점에서 먹물을 묻혀 진하고 두꺼운 글씨와 연하고 얇은 글씨가 통일되지 않는 형태로 적혀 내려가 있죠. 이것이 바로 '일본스러운 아름다움'의 정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아름답다...
元永本古今和歌集(げんえいぼんこきんわかしゅう) 겐에이본 고킨와카슈입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 12세기에 필사된 사본입니다. 가나 서문 및 전 20권에 달하는 고킨와카슈 전체가 남아 있는 완본으로써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작품입니다. 상, 하 2권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헤이안 시대 후기인 元永3년 경에 쓰여졌고, 상권 말미에 본문과 같은 필체로 元永3년(1120년) 7월 24일이라고 적혀 있어 이러한 명칭이 붙었습니다. 상, 하첩 두 권 다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藤原定実(ふじわらのさだざね)의 글씨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는 藤原行成(ふじわらのゆきなり)의 증손자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아마 명확하게 성립 시기가 적혀 있으니, 꽤 유력한 추측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겐에이본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화려한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양을 박으로 찍어 낸 종이와, 잘게 자른 금박이나 은박 등을 뿌린 종이를 마주보는 양쪽 면에 번갈아 가며 배치하고 있습니다. 문양의 종류 또한 십수개에 달합니다. 저도 지난 주에 도쿄 국립박물관 상설 전시에서 공개한다길래 냅다 달려가서 보고 왔잖아요? 이 화려함은 정말이지 직접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감동이 있더라고요. 이쪽 저쪽으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고 있으면, 당대에 이 고금와카집이, 그리고 아름다운 서예 글씨가 어떤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감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야, 이 정도로 화려한 종이는 사적인 용도로 쓰기엔 아무래도 어려웠을테니까요.
앞에서 소개한 11세기의 서예 작품에 비해, 헤이안 후기가 되면 글씨 그 자체의 형태도 더욱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갈고 닦인 모양새를 보여주고, 종이 또한 이처럼 무척이나 화려한 것으로 변해갑니다. 그야말로 우아한 왕조 문화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巻子本古今和歌集(かんすぼんこきんわかしゅう) 간스본 고킨와카슈 입니다. 巻子本(かんすぼん) 이란, 두루마리 형태를 말합니다. 본래는 본문 20권에 가나 서문 1권을 더해 총 21권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재에는 가나 서문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한 두루마리 형태로 남아있고, 13권은 약 반 정도 분량이 두루마리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 나머지 권들은 각각으로 잘려 여기저기 다양한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또한 위의 元永本과 마찬가지로 藤原定実(ふじわらのさだざね)의 글씨인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무척이나 세련된 글씨체를, 유려한 흐름으로 적어내려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스본도 위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화려한 종이를 뽐내고 있습니다. 각각의 색으로 물들인 종이를 이어 붙이고 운모(돌비늘)나 밀랍 등을 이용해 꽃으로 된 격자 무늬(花襷文)나 당초 무늬(唐草文) 등을 표현한 종이입니다.
이것 또한, 색색으로 화려한 종이를 반드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총 네 가지 사본을 소개했습니다. 모든 고필은 고금와카집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특히, 같은 원문을 갖고 각각의 서체, 각각의 종이에 써내려 간 것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자료 중에 같은 시를 적은 것이 있다면 그걸 비교하며 시대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언젠간 하고 있겠지?) 이 네 가지는 정말이지 기회만 된다면 달려가서 반드시 보고 싶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통해서 아주 자주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여러 번 등장했음..) 그러려고 겸사겸사 이 포스팅을 통해 내용을 정리하는 거기도 하고요. 사실 앞의 高野切와 関戸本에 대해서도 종이料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긴 했는데.. 그건 또 다음에 언젠가 하는 걸로 하고, 이 포스팅은 이쯤에서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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