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 잡담

240112 서예 수업, 그리고 커피와 화과자

센. 2024. 1. 1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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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번 여행에서 사온 과자와 포스트 카드 선물도 드리고, 전시회 구경한 이야기도 하고 새로 진도도 나가고요. 맞아, 드디어 제가 いろは를 졸업했습니다!! 우하하! 연휴 동안 연습을 아예 안 한건 아니었지만 그 외에도 재미있는게 너무 많다보니 조금 게을러졌던 것도 사실이고.. 그간 고필 작품들을 너무 많이 접하니까 눈이 확 높아졌는데 그에 비해 제 손이 안 따라와주니 글씨 쓰다가 답답함을 느끼던 것도 사실이고요... 직전까지도 썩 마음에 드는게 나오질 않았는데, 수업에 가서 차분히 집중하고 쓰니 제가 보기에도 제법..? 나쁘지 않은..? 글씨를 쓰더라고요? 하하. 이제 料紙에 써서 완성하면 돼.. (물론 이건 또 다른 높은 산..)

그래서 다음 진도는 두 글자 씩 이어 쓰는 連綿(れんめん)입니다. 그리고 変体仮名(へんたいがな) 변체가나도 슬금슬금 들어와요. 맞아, 지난번 전시회를 보고 또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변체가나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이 많이 생겼었는데, 특히 전시회에서 봤던 작품 중에 한 장의 글씨 안에서 같은 발음의 글자를 히라가나와 변체가나를 섞어서 쓴게 있더라고요. 변체가나가 히라가나로 형태를 바꾼 건 시대에 따르는 변화인 건 사실일텐데, 그리고 같은 발음의 글자를 구분해서 쓴다는 것은 각각이 다른 의미, 혹은 다른 발음을 나타냈나?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이걸 선생님한테 물어보자 너무 감동하신 표정으로... 그런 의문점을 가져주다니~ 너무 기뻐.. 하시면서 또 자료를 잔뜩 가지고 와서 이것저것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셨어요ㅎㅎ 崩し字(くずしじ) 라는 카테고리 안에 변체가나가 있다는 설명을 봤는데, 이 설명이 저는 납득이 잘 가지 않길래 이게 맞나요..? 하는 질문도 드렸는데 아마 선생님도 저랑 비슷한 부분에서 납득 못하고 계신 것 같았어요ㅎㅎㅎ 뭘 가지고 崩し字라고 하는지에 따라 그럴 순 있겠지..? 그치만 그런 분류라면 히라가나도 그 카테고리에 들어갈텐데..? 하셨거든요ㅎㅎ

특히, 같은 伝藤原行成의 작품들이어도, 글씨체에 차이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사용하는 변체가나의 비율이나 종류, 혹은 종이料紙를 보면 분명히 시대에 따른 차이가 보이더라고요. 결국 같은 사람의 글씨가 아닌게 맞구나, 하고 실감하는 과정이라 약간 슬프기는 하지만(?) 또 분명한 사실이기는 하고, 그걸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거라서 앞으로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보고 제가 직접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겠.. 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선생님과 대화 중에 古今和歌集・元永本에 대한 주제가 나왔어요. 이건 현존하는 古今和歌集 중에 유일하게 완본이 남아 있는 작품이고, 그래서인지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요. 현재는 도쿄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직접 보면 그 화려함이 남다르게 다가올거라고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오라고 하시는거예요? 근데 저는 이게 1/2부터 1/14까지 마침! 국립박물관에서! 전시중이라는걸! 알고 있었지 뭔가요...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넵..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마음 속에서 결정을 내렸답니다ㅎㅎ
그나저나, 정말 화려한 종이죠? 글씨의 유려함도 꽤나 장식적 특성을 보이고요. 이건 전시회에 다녀 온 후기에서 겸사겸사 정리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藤原定実(さだざね)의 글씨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古今和歌集巻子本의 가나 서문도 같은 사람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저 이 글씨 꽤 좋아하는 것 같아요;; 휴

또 저는 그간 공부한 내용을 탈탈 털어놓습니다(?) 마쿠라노소시 판본 얘기도 했어요. 정판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활자 인쇄는 기본적으로는 한 글자 한 글자 준비할텐데, 이랬을때에도 連綿을 구현할 수 있나요? 했더니 불가능한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정말 힘들었겠다; 같은 소리를 했어요.. 아무튼 이때 정리해서 쓴 글에 있는 판본 몇가지 보여드렸는데, 국회도서관 복각판은 아마 인쇄가 아니라 필사본인게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엥 그런가요?? 했더니 에도시대 때는 필사본이 엄청 유행했었대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설명 페이지에 사본이라고 적혀있었더라고요. 몰랐을땐 안보이다가 알고나니 보이게 되는 마법.. 이러려고 블로그로 정리하죠 네.. (진짜임) 참고로 해당 글에 있는 국문학연구소 자료관 소장본도 사본. 그걸 알고 나니 확실히 인쇄본과 필사본의 차이가 눈으로도 구분이 되는것 같긴 하더라고요? 정말이지, 예전에 어딘가에서 본, 지식을 쌓는다는건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 같다는 말에 늘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감각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藤原行成의 자필로 확인된 글씨는 현재 한자 글씨만 남아있는데(슬퍼..) 이게 중국(당나라)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까요? 하고 여쭸더니, 아마 맞을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 공부를 엄청나게 했던 사람이니까 더욱 더 그럴거라고 하시길래, 아 역시 그렇죠.. 하면서 나중에 한번 들여다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요즘 国風文化 국풍문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해당 개념이 제국주의 시대에 무척이나 국수주의적으로 개발된 부분이 분명히 있고, 실제 헤이안 시대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국제적'이었다는 논조로 책을 집필하셨더라고요. 안그래도 국풍문화라는 단어에 조금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던터라 엄청 공감하면서 읽고 있어요. 저는 특히 외국인의 입장이니까 금방 비교역사학적 관점이 튀어나오니 당나라에서 유래한거면 당나라의 자료를 좀 찾아봐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쉽게 연결 되기도 하고 당나라에 비슷한게 없으면 신라에서 영향을 받은게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옛날 조선에서 중국을 어떤 식으로 여겼는지에 대한 감각은 있으니까 아마 그것과 비슷한 결이겠구나, 하기도 쉬운데 이게 일본인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건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헤이안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한 사람들이면 당연히 알고 계시고요. 

마지막으로(?)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요즘 열심히 마쿠라노소시 원문과 현대어역문을 읽고 있다고 했더니, 빨리 의미를 알고 싶어서 현대어역문만 읽고 싶어지지 않아? 하고 물어보시는거예요. 그래서, 물론 당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원문을 직접 보고 직접 이해하고 싶으니까 지금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익숙해져야죠. 어쨌든 현대어역은 역자의 필터링이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원문 읽고 현대어역 읽고 다시 원문 읽으면서 아, 이런 표현을 썼기 때문에 현대어역을 그런 식으로 했구나, 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맞아 원문 읽고 싶지~~ 하고 너무나 깊게 공감해주셨어요ㅎㅎ 근데 저는 처음부터 현대 일본어도.. 역자의 필터링을 빼고 원문을 직접 이해하고 싶어서, 디테일한 언어 표현에 발화자의 어떤 심상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공부했던 사람이라서.. 그냥 늘.. 여전히.. 똑같은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냐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게 얼레벌레 벌써 20년 전 일이더라고요;)

아무튼, 변체가나와 料紙 등에 대해선 다시 천천히 정리해서 포스팅을 하기로 하고요.

서예 수업을 끝내고 근처에 화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길래 들러서 화과자를 하나 사왔답니다. 물론 그 바로 옆에 양과자 가게.. 아니 농담이고 케이크를 파는 가게도 있었는데, 서예를 끝냈으니 오늘은 화과자 기분이지(?) 하고 이쪽을 선택했어요. 그러고나서는 근처에 로스터리도 있어서 커피를 사온 건 좀 모순적이지만 하하. 차도 한동안 마셨는데 요즘은 커피로 정착해버렸거든요.

아무튼, 다른 종류들도 있었지만 上生菓子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걸 선택했어요. 계절에 맞는 예쁜 모양새로 여섯 일곱 가지가 나란히 앉아 있는게 무척이나 아름답더라고요. 1월이라 복을 기원하는 것, 장수를 기원하는 것, 소나무의 모양새를 나타낸 것 등이 있었어요. 제가 고른 건 香梅라고 쓰고, こうばい라고 읽는 위의 아름다운 핑크빛 화과자입니다. 한자는 매화 꽃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こうばい라고 하면 홍매화(紅梅)를 나타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을, 예쁘고 귀여운 핑크빛을 보면 느낄 수 있죠. 사실 화과자 디자인적으로는 조금 더 차분한 컬러가 취향이긴 한데, 그만 홍매화에 덥썩 넘어가고 말았답니다(?)

맛은 아주 부드럽고 달달한 팥이 기분 좋게 만들어줍니다. 사실 上生菓子라는 표현도 제법 제 마음을 흔들었답니다(?) 이런 식으로 팥을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 예쁜 모양을 내는 화과자를, 練り切り(ねりきり)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만드는 기법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그치만 조금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는 해요. 그걸 上生菓子(じょうなまがし)라고 부르면 특히나, 계절이나 고전 문학을 의식한 디자인이나 재료를 이용해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練り切り 화과자를 가리키는 뉘앙스가 되죠. 물론 上라는 글자가 붙어있으므로, '상류층의' '상등품의' 라는 맥락도 있지만요. 

사실 이런 종류의 화과자는 1700년 즈음에 교토에서 시작된 문화입니다. 당시에는 궁중이나 상류 계층, 절 등에 헌상되었던 것으로 서민들이 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발상지인 교토에서 만드는 것은 더욱 품격이 다르다, 는 맥락으로 京菓子(きょうがし)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1700년 즈음에 시작된 문화라는 걸 생각하면 저한테는 크게 와닿지는 않기도 한데(?) 唐衣(からころも) 당의, 라는 이름의 화과자가 보랏빛의 제비붓꽃 형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앗 나도 이거 알아, 하고 웃음짓게 되는 것처럼 같은 것을 좋아하는 동지애(?) 같은게 있다고 할까요?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2차 창작을 소비하는 그런 개념이라고 할까요... 香梅(こうばい) 화과자를 사면서 마쿠라노소시의 한 구절을 떠올렸던 것처럼 말이예요. 아무튼 꽤 좋은 분위기의 가게였어서 앞으로도 서예 수업이 끝나고 가끔은 들러서 화과자를 사올 것 같네요.

앗 그리고 커피. 요즘은 이미 갈려 있는 콩만 사서 편하게 마시는걸 위주로 했었는데, 최근에 다른 사람을 드립 커피에 본격적으로 입문 시키는 바람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서.. 커피 콩을 선물하려고 들러봤어요. 그리고 선물용 콩을 사는 김에 제것도 겸사겸사. 선물한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G1 중배전. 프루티한 향이 취향이라길래 그럼 예가체프가 잘 맞을것 같아서 이걸로 골랐고, 저는 미얀마산의 약~중배전 커피를 골랐습니다. 차분한 고소함에 약간의 산미가 좋더라고요. 화과자와도 잘 어울리는 커피였습니다. 이 로스터리도 가끔 들르게 되지 않을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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